가톨릭평화신문 「사목단상」에 실린 최진혁 안셀모 신부님의 글과, 본당에서 나누신 글을 모았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전체를 읽으실 수 있고, 신문 지면 원본(PDF)도 함께 있습니다.
불편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과 이웃
불편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과 이웃
저는 지난 6월 남미에서 선교하는 신부님을 방문하였고 신부님과 함께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를 여행하였습니다. 페루 리마에서 볼리비아의 우유니로 이동한 후 칠레로 넘어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당시 현지 사정으로 예정했던 라파스에서 항공편을 이용하기 어려워 버스를 타고 다른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차에서 내려 짐 검사를 받았고 예상보다 오래 기다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불편한 이동 덕분에 많은 여행자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등에 매고 긴 시간 버스를 타며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고 있었습니다. 낯선 음식과 불편한 숙소, 복잡한 출입국 절차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들은 여행을 와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 익숙한 집과 음식, 안정된 교통수단과 잘 정리된 일상속에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가방 하나를 메고 낯선 길로 나왔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명화된 사회는 인간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필요한 것은 집 안에서 주문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은 곧바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많은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과 실패는 줄어들고, 하루는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예상대로 해결되는 삶은 때때로 권태를 낳습니다. 새로운 것을 보아도 이미 화면으로 보았던 것이고 필요한 것을 얻어도 누군가에게 고마워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삶은 편리해 지지만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할 이유도 함께 줄어듭니다.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누구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풍요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에서는 익숙한 질서가 무너집니다. 길을 모르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계획이 어긋나는 일을 겪습니다. 그때 사람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게 됩니다. 길을 찾는 일과 국경을 넘는 일 한 끼를 먹는 일조차 하나의 사건이 됩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에 권태가 들어설 자리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에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해집니다. 길을 알지 못할 때 누군가에게 물어야 했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손짓과 표정으로 뜻을 전해야 했습니다. 버스와 국경을 오가는 긴 여정 속에서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짐을 살펴 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문명화된 삶에서는 불필요하게 보였던 기다림과 불편함이 여행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누군가의 친절과 정이 채워 주었습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나 도움을 받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야훼이레! 하느님, 감사합니다. 역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군요.”
저에게 이 기도는 여행 제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제로 살아가면서 평생 이어질 기도가 될 것입니다. 아멘.
[가톨릭 신문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