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최진혁 안셀모 신부님께서 미사 때 나누신 말씀입니다. 주일 미사와 평일 미사, 수녀원 영어 미사의 강론을 함께 모았습니다.

연중 23주일 2026년 9월 6일

주일 미사
작성자
최진혁 안셀모 신부
작성일
2026-09-05 22:34
조회
31

오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한 분이 저를 보더니 반갑게 말을 걸었습니다.

“신부님이세요?”

제 이름도 모르고, 저를 처음 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반갑게 저를 대해 주셨습니다.

아마 제가 사제의 옷을 입고 있었고, 식사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이 반가워한 것은 ‘나’라는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면서 제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알아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제를 통해 교회를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떠올린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오늘 이 말씀에서 특별히 내 이름으로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교회는 그냥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느 한 개인의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부의 것도 아니고,

어떤 신자의 것도 아니며,

오래 다닌 사람의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누구 개인의 소유도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와 복음을 함께 읽어 보면

세 말씀은 사실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경고하여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찾아가서 타이르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저 사람 인생인데 알아서 하겠지.”

“나는 내 신앙생활이나 잘하면 되지.”

“괜히 말했다가 사이만 나빠지지.”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주님의 이름으로 불려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형제를 타이른다면 어떤 마음으로 타일러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들려줍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이어서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타이르는 이유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내 말을 듣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타이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데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하고 외면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화를 내고, 모욕하고, 단죄하고,

내 기준으로 상대를 억누르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복음적인 타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주님에게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너와 함께 하느님께 가고 싶다.”

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세 말씀은 이렇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형제를 외면하지 마라.

사랑으로 바라보아라.

왜냐하면 너희는 내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가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아무 관계 없는 개인들이 같은 시간에 성당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분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모으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통공의 교리입니다.

내 기도가 누군가를 붙들어 줄 수 있고,

누군가의 기도가 나를 붙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넘어질 때 누군가 나를 일으켜 주고,

누군가 넘어질 때 내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의 빚을 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은 한 번 갚고 끝나는 빚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생 서로 사랑하며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도 우연이 아닙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말씀은 일치에 관한 말씀이고,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혼자 잘 믿어서 혼자 하느님께 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함께 가라는 말씀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비난하기 전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사랑으로 이야기해 준다면,

그 말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려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서로를 붙들어 줍시다.

서로가 하느님께 갈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나도 그들 가운데에 있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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