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혁 안셀모 신부님께서 미사 때 나누신 말씀입니다. 주일 미사와 평일 미사, 수녀원 영어 미사의 강론을 함께 모았습니다.
2026-8-22 연중 21주일 강론
지금 저는 2주째 새벽에 수녀원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영어로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무엇보다 새벽 6시 미사에 매일 일어나서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를 다니면서 한 가지를 조금씩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수녀님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구나.”
그래서 요즘은 이 새벽 미사가 저에게도 참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 공동체가 설립 25주년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우리 교우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잠을 조금 줄이고, 영어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희생을 기꺼이 봉헌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가 공동체를 위해 드릴 수 있는 작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수녀원 미사에 가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수녀님들이 바치는 아침기도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와는 조금 다른, 거룩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참 복된 사람이구나.”
그리고 저를 조금씩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저에게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를 사랑하시며,
지금도 저를 조금씩 키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말씀 전체가 사실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엘야킴에게 권한을 맡기시며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십니다.
열쇠는 단순히 문을 여는 물건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열쇠를 맡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믿고, 책임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왜 베드로에게 그 열쇠를 주셨을까요?
베드로가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한 가지 고백을 보십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이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던 것처럼,
시몬도 주님을 고백하면서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진정한 제자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베드로가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더욱 아름다운 고백을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와 지식은 얼마나 깊은지,
누가 그분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고,
하느님을 통하여 존재하며,
마침내 하느님을 향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누구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는가?
돈 앞에 무릎을 꿇고 있지는 않은지,
명예와 성공 앞에 무릎을 꿇고 있지는 않은지,
자녀나 부모, 사람들의 인정과 기대가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것 앞에 무릎을 꿇기보다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억누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키워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질문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저에게 그분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를 사랑으로 키워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그리고 나는 오늘
누구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