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 「사목단상」에 실린 최진혁 안셀모 신부님의 글과, 본당에서 나누신 글을 모았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전체를 읽으실 수 있고, 신문 지면 원본(PDF)도 함께 있습니다.
안데스에서 만난 선교의 얼굴
지난 6월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동료 사제와 함께 페루에서 선교하시는 신부님을 방문하였다. 리마를 지나 쿠스코와 안데스 산맥의 높은 도시들을 거쳐 도착한 그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라기보다,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교회와 선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외부인의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지만, 동시에 사제로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교회와 선교사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제관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고산병 약과 산소통이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땅에서 사목한다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말이 아니었다. 직접 그곳에서 지내 보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숨은 짧아지고, 머리는 둔해지고, 걸음 하나도 평소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선교하는 신부님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밝았다. 몸은 고단해 보여도 마음은 꺾이지 않아 보였다. 고산의 공기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면, 아마 복음을 전하려는 사제의 열정일 것이다.
페루의 가톨릭 교회는 오랜 시간 그 땅의 기억과 함께 숨 쉬어 온 교회였다. 그곳에서는 토착화, 곧 inculturación이라는 말이 책 속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산과 땅, 조상과 자연을 기억했다. 안데스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한 흙이 아니었다. 생명을 품고 길러 주는 어머니, 곧 Pachamama의 기억이 그 안에 있었다. 교회는 그 기억을 무조건 지워 버리지만은 않았다. 잘못된 것은 정화하고, 참된 갈망은 복음 안에서 새롭게 해석해 왔다. 땅의 어머니를 향하던 마음은 성모님을 향한 깊은 신심 안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기도 했다. 자연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던 마음은 이제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와 함께 복음 안에서 다시 해석되었다. 그 과정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한 백성이 자기 언어와 기억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가는 긴 여정처럼 보였다.
쿠스코에는 특별한 그리스도 신심도 있었다. 사람들은 흑갈색의 십자가상, 곧 Señor de los Temblores를 깊이 공경한다. 케추아어로는 다정하게 Taytacha,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지진이 많았던 그 땅에서 사람들은 흔들리는 대지 한가운데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붙들었다. 전례적으로는 성지주일과 성목요일의 행렬에 고유한 의미가 분명하지만, 쿠스코의 대중 신심 안에서는 성주간 월요일, 곧 Lunes Santo의 행렬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나 곧 이해가 되었다. 자주 흔들리는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교리 속의 분이 아니라, 무너지는 집과 두려운 밤을 함께 지나 주시는 분이었다.
페루에서 나는 선교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선교는 내가 가진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일이 아니었다. 선교는 먼저 그 땅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두려움을 듣고, 그들의 눈물과 기쁨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는 일이었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낯설고 복잡해 보이는 신심도, 내부자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한 백성이 하느님께 다가가려는 간절한 길이었다. 고산지대는 내 몸을 무겁게 했지만, 그곳의 신앙은 내 마음을 깨웠다. 산소통 옆에서 살아가는 선교사 신부님의 밝은 얼굴, 성모님께 꽃을 바치는 사람들, 흔들리는 땅 위에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렬. 그 모든 장면이 내게 말해 주었다.
복음은 모든 민족의 언어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상처와 기억을 구원의 자리로 바꾸는 하느님의 힘이다. 오늘도 낯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신앙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